시험 끝났는데 혼자 끝내서 놀게 없...OTL
뭐 이래?!
내년부터 언론학과 전공 들으면 진짜 혼자일텐데 더 심할텐데;;;
그래도 시험 끝나니 짱좋네요.
시험짱! 맨날 볼까!
?!?!?!
중간고사 종막 기념으로 하나 갑니다.
본격 밀리터리 판타지...인척
폐쇄공간 신본격 추리...일듯
장르불명 내멋대로 뻥타지 리얼 로망스
<거짓말쟁이의 허풍박살>
ps 도시와 마녀 외전 3탄!...일수도
눈이라는게 대단한 점이 점성도 없는 것들이 잘도 달라 붙는다는 점이다. 새하얗고 투명한 조각들이 뭉치면 그건 어느세 추해진다. 일정이상 덩어리가 된 설괴는 보는 사람의 기분마저 추락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건 분명 감정이입에 습관화된 인간들의 감각일 뿐이다. 두어시간째 눈보라속에서 고전분투하던 눈삽은 꽁꽁 얼어붙어 몇배의 무게를 갖춘 흉기로 탈바꿈해 있었고, 나는 절망에 떨며 중얼거렸다. 초과학의 산실이라는 곳에서 이 무슨 블루칼라적 노동에 동원된단 말인가! 난 원래부터 블루라는 색은 싫어했단 말이다. 라고 화이트의 배경속에서 좌절해 보았지만 무릎이 시려 냉큼 일어섰다. 옆에서 묵묵히 굴삭기마냥 눈을 퍼나르던 치환형이 요상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변명을 해 보았다.
"루드비코 치료법이라도 받아야 될것 처럼 보지 말아요."
잠시 쉬기로 한듯 강건한 어깨에 눈삽을 둘러맨 치환형은 허리를 스트레칭 하며 몸을 일으켰다. 잘 발달된 상체와 어깨 때문에 그림이 좀 되는 형인지라 겨울철에도 얇고 타이트한 옷을 즐겨 입고 다녔는데 오늘 혹독한 상황에 빠져버린듯 했다. 추위에 오른 닭살에 왠지 형의 근육들도 다 오그라들은듯 보였다.
"걱정마라. 난 여기서 만난 인간들한테 스탠다드standard를 기대해 본적 없으니까. 너정도야 무난하지."
하고는 카하핫 호탕하게 웃는다. 웃는게 웃는것 아닌것 같은 갈라진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이 무슨 막내들의 설움인가. 그렇치만 그냥 넘어갈수는 없는 이야기다. 물론 메타결합소자(MCD);광의廣義통일연구소 통칭 MDR라고 불리는 이 명부마도, 초월마계, 지옥 끝 층, 천의무봉의 판데모니엄...등등 온갖 치욕스러운 별칭으로 불리는 이곳. 스탠다드 보단 스탠드(오라오라오라 나 무다무다무다 같은)가 어울리는 괴짜괴인들의 집합소에서 몇 안되는 정상인을 자부하는 인간다운 말이었지만, 나 역시 정상 of 정상, 노말 중의 노말이라고 불리기 충분한 인간일진데. 어이없다는듯한 내 반응에 형은 단호하게 손을 저어보였다.
"그 순간 스탠릭 큐브릭이나 지껄이는 너도 대한민국 표준은 아니거든."
그다지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편이 아닌 난 막힌 말문에 짜증이 나 눈삽을 휘둘렀다. 물론 눈덩이를 한웅큼 담아서. 직격으로 피탄된 치환형은 눈보다 새하얀 웃음으로 날 바라봤고, 순간의 실수에 절망했다.
그리고 눈속에 파뭍히는건 순식간이었다. 인간(특히나 연구원형의 특수체질)이 근육바보에게 덤비는게 아니었다.
다시 엉망이 된 눈의 산들을 보며 절망에 젖어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형은 자청해서 홀로 제설작업을 강행했다. 이래서 이 형을 미워 할수가 없단 말이지. 그야말로 성인남성의 바다같은 도량에 감읍하며 젖은 몸을 이끌어 같이 작업을 도와야겠다. 불끈 셈솟는 의지에 힘차게 두팔을 휘둘러 치환형의 옆에 서자 반짝거리는 미소로 날 맞이하는 호남이 있었다. 아, 빛나는 우정을 무지개 삼아 눈삽을 휘둘러볼까. ...이런 탄력적인 전개는 역시나 나와 어울리지 않았는지 30분만에 나가 떨어졌다. 울끈불끈 펌핑된 양팔을 늘여뜨리고 혀를 내밀고 있었는데, 치환형의 경이적인 작업량을 보니 다시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었다.
"형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거에요. 이 오지에 들어온 뒤로 운동도 거의 안하는것 같던데."
순간 눈삽이 날아들었다. 한가롭게 앉아 보온병에서 물이나 떠마시며 묻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지만 야만인! 이라고 쏘아붙이는걸 잊지 않았다. 역시나 형도 나름 짜증이 쌓인듯 평상시처럼 테클거는것도 잊는게 안쓰러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멈출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기를 부려 몇번 더 도발을 시도했다가 겨우 죽음의 문턱 앞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끝이 안보이네."
아련하게 우수를 담아 지긋한 눈빛을 쏘아보이며 읖조려봤지만, 치환형의 고문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가 영 볼품없었나 보다. 치환형은 혀를 차며 조롱하더니 다시 눈삽을 줏었다.
"임마, 이정도는 감히 눈이라고 부를수도 없는거다. 내가 장성에 있었을때 눈이 한번 오면 말이지..."
눈을 푸는 속도에 맞춰 리듬감 있게 타오르는 무용담에 나는 진이 빠지는걸 느꼈다. 맙소사, 저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다니. 믿어줄수도 안 믿어줄수도 없는 밀리터리 판타지를! 치환형의 몇 안되는 치명적인 약점인 '군대 시절 그 대단했던 장치환 하사'의 무공훈장 수여급 스펙타클한 스토리가 그 장대한 시작을 드러내고 있었다. 통칭, 군대썰. 아무리 여기 현역으로 군대 갔다온 사람이 자기 혼자라고 해도 너무하는거 아냐?
"...여단장이 오기전에 우리 소대 하사들에게 주어진 거라곤 숟가락 하나씩 뿐이었..."
이쯤되서는 적당히 들어주는척 추임세를 넣어줄 필요도 없다. 이미 자기 이야기에 본인이 빠져들었으니까. 바로 등뒤에서 목조르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쳐도 반응 한점 없었다. 그놈의 여단장인지 남단장인지 뭐하는 작자길래 한번 떴다하면 저 자부심 넘치는 특전사들이 죽고 사는지 난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미 이야기는 거침없이 흘러갔다. 적설량이 2미터(!!)쯤 되던 눈속에서 여단장님의 주차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되고 낙오된 전우들이 어느세 두자릿수는 될 듯 싶었다. 그 소대 하사가 5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뭔가 테클걸기도 귀찮아져서 힘을 내 눈을 퍼 담았다.
"그때였지. 저 반쯤 사이보그 군단이라고 할수 있는 북괴뢰군도 넘보지 못할 우리의 후방에서 정체 불명의 그림자가 나타난것은 말이야. 그 행보관님의 기도비닉은 가히..."
내가 미쳤지. 몇 안되는 동기 연구원이고, 연구원치고 몇 안되는 현역 예비역에 말로만 듣던 특전사 출신이라길래 살갑게 군대 이야기를 물었던 첫만남이 잘못이었던 거다. 이 인간은 그 뒤로 자연스럽게 위풍당당 군대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제와서 그 뻥이 수습도 못할 정도가 되버렸다. 이미 도취된 본인은 기억자체를 조작해 버린듯도 싶지만 기가차는 이야기다. 왜 밖의 여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에 기겁을 하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경험해 버렸다. 도대체 30살 다 되가는 성인남자가 공중 삼회전 트리플 악셀로 대폭발 허리케인슛을 쏴 골대가 무너진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손이 얼어 눈삽이 붙은 체 행보관님은 날 말리셨지. 나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나만이 국방을 지킬 하늘의 백장..."
에잇!
하고 나도 모르게 눈삽으로 뒤통수를 후려쳐 버렸다.
다행이 10초쯤 뒤에 멀쩡이 일어섰는데, 더욱 다행인건 떠들던 기억도 잊어버린듯 했다. 건강한 사람은 편하구나 싶었다. 몇번이라도 더 후려쳐 줄 수 있었는데.
내가 이공계 답지 않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오늘 이 에피소드가 소설의 시작이라면 가정을 해보자. 독자라면 의아해할 것이다. 도대체 눈 푸는 이야기는 뭐고, 군대 이야기는 뭐야. 여긴 배경이 연구소 라는 설정 아닌가? 작가가 착각한건가? 나라도 그렇겠다. 도대체 이 유수의, 굴지의, 초 엘리트 연구소 MDR의 연구원으로 뽑혀온 재원인 내가(그리고 믿겨지진 않지만 치환형도) 한가로이 눈이나 치우고 있는 이 상황은 도대체 뭔가. 그놈의 여단장이라도 뜬거냐 하고 외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하진 못했다. 사실 정답에 굉장히 가까운 추론이기도 하다. 말 안듣기로 유명한 MDR의 신입 연구원들이 감히 일구반언조차 하지 못하고 헬기포트나 단장하고 있게 만들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쯤 되냐고? 글쎄 미합중국의 넘버원이 온다고 했으면 예의상 해줄 수 도 있겠지. 그건 어디까지나 도의상이다. 명목상. 보여주기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다르다. 감히 할 수 없노라고 튕길수 조차 없는 거물중의 거물. 달리 말하자면 괴물중의 괴물. 천재, 수재, 영재, 준재俊才, 일재逸才를 총 망라해서 모아놨다는 이 연구소의 프라이드 덩어리들 조차도 만나기를 고매했던 그 분이 오시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에 당도하는건 저 유명한 전능수全能數 뤼 펑쉬어呂風碩소장이었다.
흔히 세간에서 과장되게 떠들기를 유럽연합과 미합중국 그리고 떠오르는 실세 중국 이라는 세계 구도를 바꿔놨다고 까지 평해지는 아시아의 세 천재들 중 특히나 중화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그가 이곳에 오는 것이다. 물론 세계 구도까지는 오버라고 해도 최소한 우리 학문을 한다고 자부하는 치들 에게는 그 이상의 폭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전대미문의 존재가 바로 그들 이였다. 이런 호들갑 스럽다 못해 광란적인 반응이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다. 여중에 우연찮게 들린 HOT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요즘은 GOD였나. 빅뱅이었나.
선생님에게 칭찬받길 바라는 어린애마냥 연구 주제를 바리바리 싸들고 평론 한마디를 받기위해 오매불망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계셔 우리 말단들은 이런 청소 나부랭이나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가 얼마나 불세출의 천재일지는 차치하더라도 중국대륙의 히어로나 다름없는 그 존재는 반중 의식이 팽배해진 현재 우리나라에 어울리는게 아니었다. 만약 공식적인 루트로 방문했다면 좋은 모양세는 못보였을듯 하다. 다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기회니 다들 예민해진 상황이어서 사실 연구소 내부는 현재 전쟁터보다 몇배는 높은 긴장감 속일 터였다. 학자라는 인간들은 아무래도 대중 또는 언론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라 '반중의식? 그건 새로운 중력자 가설이냐?' 이러고 싶었을텐데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불가일세의 대학자가 바로 옆나라에 있는데 교류 한번 떳떳하게 못하다니 할복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거다.
물론 내 알바는 아니지만.
"전능수全能獸라. 진짜 삼두육비의 괴물딱지가 헬기에서 내리는건 아니겠지?"
"아이고, 그럼 잘됬구나 하는 심정으로 주먹부터 날릴 사람이 무슨 소릴."
본인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하던 치환형은 새삼스레 정색을 했다. 저런 열혈쾌남이 어떻게 연구자 가운을 입고 몇 나노미터짜리 샘플들을 다루는건지 미스터리하기 그지 없다.
"야, 아무리 나라도 감히 려소장님한테 그런 불경스런 상상을 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우리는 그런 천재들하고 한시대라는거에 감사해야 되지 않겠냐? 우리는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알고 있잖아."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는 형을 나는 바라보았다. 조금은 멸시하듯. 약간은 조롱하듯. 어쩌면 경애하듯.
"진짜 천재가 얼마나 엄청난건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잖아. 난 가끔 그 재능의 편린이라도 볼 수 있는 내 두뇌에 감탄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당신은.
헬기도착 30분전을 알리는 메세지에 헐레벌떡 수선을 떨며 정리를 끝마치고 헬기포트로 돌아가자 이미 인산인해의 띠가 완성되 있었다. 이 연구소에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팝콘이라도 가져와서 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양식있는 정상인은 상상에서 끝내고 만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참았다. 소리와 함께 찾아든건 차가운 바람이었다. 인위적이고 폭력적인 시끄러운 바람이 머리위에서 쏟아졌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뿜는 거친 숨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 들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치환형은 침이라도 흘릴 기세인지라 정강이를 후려 차 보았지만 역시나 혼이 나간 상태라 반응이 없었다.
정말 이런 광신적 반응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천재? 그게 뭐라고 사람들을 이렇게 홀리게 하는건지. 오만하고, 기고만장하고, 건방지고, 버릇없고, 대인관계 얄팍하고, 예의범절 무시하고, 자기 혼자 잘난 맛에 살아가고, 동정심도 없고, 이해력도 없고, 하등 곁에둬서 도움이 될 게 없는 존재가 천재 아닌가. 물론 어느정도 편견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본 예는 다 그렇다. 저기서 많이 벗어난 존재는 벌써 천재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번뜩이는 재능과 영감을 가지고 문제를 호쾌하게 풀어낸다고 해도 나는 그럼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다.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진리를 견고하게 구축해 나간다고 해도 관심 밖이다. 어디 가까운 서점에 가서 들여다 봐라. 천재는 그냥 책속에만 있는거다. 책을 늘리고, 딱딱하게 견고하게 키우고, 지식이라는 전당에 보석길을 깔기 위해서나 존재하는 거다. 나의 현실속에 천재란 없다. 절대로. 결단코. 그런 존재가 무슨 연예인이라고 이 난리를 치고 모이는 건지 난 알기는 하지만 이해할 순 없다. 그래서 아마 려소장이 헬기에 내리는 모습을 가장 똑똑히 바라본 것도 나일거다. 다들 려소장의 후광에 도취되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심지어 진짜 후광도 마음속에서 우러난 정신도 아닌 개개인이 만든 환상속의 신기루 였음에도.
"와우, 저게 진짜 세계 정상의 두뇌란 말이지. 전능을 정복한 사탄의 짐승은 진짜 사람으론 안보이는데."
치환형의 가당치않은 호평 속에서도 나는 냉정히 그를 바라봤다. 그건 그냥 늙은 학자였다. 깡마른 손과 고집있어 보이는 꽉 다문 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기와 다를바 없는 아집이 가득찬 눈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천재의 그것이었다. 아, 진짜 천재구나. 그냥 천재. 하는 깨달음에 나는 얼마 있지도 않던 흥미를 잃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잠시 의외의 것을 보았다. 이 MDR에서 최연소인 나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8명의 소년 소녀들이 한가득씩 짐을 안고 헬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야 그들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15억을 돌파한 중국 대륙에서도 최고의 수재들만을 모아 만든 영재기관에서 려소장을 보좌하기 위해 뽑아냈다는 8명의 조수들은 중국에서 아이돌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과연 용모단정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까지 겹쳐졌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 신기한듯 헬기에 내려서 사방을 두리번 거리던 아이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차가운 눈은 아무리 멀리서라도 얼음으로 도려낸듯 선명하게 보여서 나는 깨달았다. 저 아이들은 중국에서도 최고의 대접을 받던 아이들이다. 시골에서 막 상경한 꼬마들도 아닌데 신기하다는듯 이 오지의 연구소를 둘러볼 턱이 없었다.
저 귀엽기만 해 보이는 꼬맹이들은 지금 우리를 정찰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호들갑을 떨고 나서 인파는 파도처럼 연구소 안으로 밀려 들었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본적 없었던 소장과 부소장이 양손을 불이나게 비비며 왕후장상 모시듯 뤼 펑쉬어 각하를 모시고 간 후 였다. 그제서야 땅이 꺼질듯한 숨을 몰아쉬며 치환형이 정신을 차렸다.
"...지금까지 숨도 안쉬고 구경한거유?"
"아와우허야크여. 넌 그 상황에서 숨이 쉬어지냐? 오오라가 무슨 사방 100미터 생명체에게 죽음의 손길 효과처럼 쏟아지던데."
"글쎄. 난 저 사람들 떠난 다음에 뒷정리 할 걱정밖에 안들던데."
내 말을 한참 곱씹던 형은 광란의 상태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뒷정리를 할만큼 한가하고 힘없는 존재가 우리밖에 없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은 듯 싶다. 그러고 보니 지금 연구소내는 무슨 축제처럼 꾸며놨다고 들었는데. 사자탈도 준비했다던가.
"으, 그걸 다 치워야 한단말이지."
중얼거리며 무슨 계산이라도 하듯 한참 손가락으로 춤을 추더니 괴성과 함께 깨어났다.
"괜찮아! 오늘 본것 만으로도 마이너스 다 상쇄하고 남는다! 기쁜 마음으로 치워주지 그딴것."
"진짜 팬은 팬인가봐. 왜 사인은 안받고."
한껏 빈정거림을 담아서 말해줬는데 대답이 의외였다.
"아, 물론 팬이긴 한데. 사실 난 전능수 보단 다른쪽이다. 말하려고 하니까 좀 부끄러운데 난 침몰원소沈沒元素쪽 골수팬이라."
"...테러리스트쪽 기질이 강하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형이랑 어울리긴 한다."
왠지 국민감정으로 연결될 것 같아서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저 중국의 전능수에게 비견될만한 이름이라고는 이 나라에선 침몰원소 하나 뿐이니라. 반중의식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뿌리 깊은 반일사상에는 비견될게 아니었으니, 아시아의 세 천재들 중 전능수와 불손설계不遜設計를 제외하면 남는 이름은 그것 하나 뿐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이야기할만한 주제가 아닌것도 분명했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학문에 뜻을 뒀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 침몰원소에게 격추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 이름은 분명 경외되면서도 터부시 될 수 밖에 없는 아이콘 이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사실 그것보다도 실명조차 밝혀지지 않은 존재를 침몰원소따위의 무협지에서나 볼듯한 별명으로 부른다는것 자체가 나는 부끄러워 상상도 안된다. 도대체 어느나라 누구의 작명감각으로 지어낸거냐. 한때 뉴스나 언론에서 사방팔방 기사를 찍어낼때는 더 엄청난 별명들도 있었던거 같다. 인터넷에는 진리를 쫓는 루시펠 같은 허무맹랑한 소개글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참 시대를 풍미했던 이름이다.
"테러리스트라기엔 지나치게 로맨티스트 적인 기질이 강하지 않냐."
절대로 착각일겁니다요.
뭐 이래?!
내년부터 언론학과 전공 들으면 진짜 혼자일텐데 더 심할텐데;;;
그래도 시험 끝나니 짱좋네요.
시험짱! 맨날 볼까!
?!?!?!
중간고사 종막 기념으로 하나 갑니다.
본격 밀리터리 판타지...인척
폐쇄공간 신본격 추리...일듯
장르불명 내멋대로 뻥타지 리얼 로망스
<거짓말쟁이의 허풍박살>
ps 도시와 마녀 외전 3탄!...일수도
눈이라는게 대단한 점이 점성도 없는 것들이 잘도 달라 붙는다는 점이다. 새하얗고 투명한 조각들이 뭉치면 그건 어느세 추해진다. 일정이상 덩어리가 된 설괴는 보는 사람의 기분마저 추락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에도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건 분명 감정이입에 습관화된 인간들의 감각일 뿐이다. 두어시간째 눈보라속에서 고전분투하던 눈삽은 꽁꽁 얼어붙어 몇배의 무게를 갖춘 흉기로 탈바꿈해 있었고, 나는 절망에 떨며 중얼거렸다. 초과학의 산실이라는 곳에서 이 무슨 블루칼라적 노동에 동원된단 말인가! 난 원래부터 블루라는 색은 싫어했단 말이다. 라고 화이트의 배경속에서 좌절해 보았지만 무릎이 시려 냉큼 일어섰다. 옆에서 묵묵히 굴삭기마냥 눈을 퍼나르던 치환형이 요상한 눈빛을 하고 있어서 변명을 해 보았다.
"루드비코 치료법이라도 받아야 될것 처럼 보지 말아요."
잠시 쉬기로 한듯 강건한 어깨에 눈삽을 둘러맨 치환형은 허리를 스트레칭 하며 몸을 일으켰다. 잘 발달된 상체와 어깨 때문에 그림이 좀 되는 형인지라 겨울철에도 얇고 타이트한 옷을 즐겨 입고 다녔는데 오늘 혹독한 상황에 빠져버린듯 했다. 추위에 오른 닭살에 왠지 형의 근육들도 다 오그라들은듯 보였다.
"걱정마라. 난 여기서 만난 인간들한테 스탠다드standard를 기대해 본적 없으니까. 너정도야 무난하지."
하고는 카하핫 호탕하게 웃는다. 웃는게 웃는것 아닌것 같은 갈라진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이 무슨 막내들의 설움인가. 그렇치만 그냥 넘어갈수는 없는 이야기다. 물론 메타결합소자(MCD);광의廣義통일연구소 통칭 MDR라고 불리는 이 명부마도, 초월마계, 지옥 끝 층, 천의무봉의 판데모니엄...등등 온갖 치욕스러운 별칭으로 불리는 이곳. 스탠다드 보단 스탠드(오라오라오라 나 무다무다무다 같은)가 어울리는 괴짜괴인들의 집합소에서 몇 안되는 정상인을 자부하는 인간다운 말이었지만, 나 역시 정상 of 정상, 노말 중의 노말이라고 불리기 충분한 인간일진데. 어이없다는듯한 내 반응에 형은 단호하게 손을 저어보였다.
"그 순간 스탠릭 큐브릭이나 지껄이는 너도 대한민국 표준은 아니거든."
그다지 말을 조리있게 잘하는 편이 아닌 난 막힌 말문에 짜증이 나 눈삽을 휘둘렀다. 물론 눈덩이를 한웅큼 담아서. 직격으로 피탄된 치환형은 눈보다 새하얀 웃음으로 날 바라봤고, 순간의 실수에 절망했다.
그리고 눈속에 파뭍히는건 순식간이었다. 인간(특히나 연구원형의 특수체질)이 근육바보에게 덤비는게 아니었다.
다시 엉망이 된 눈의 산들을 보며 절망에 젖어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형은 자청해서 홀로 제설작업을 강행했다. 이래서 이 형을 미워 할수가 없단 말이지. 그야말로 성인남성의 바다같은 도량에 감읍하며 젖은 몸을 이끌어 같이 작업을 도와야겠다. 불끈 셈솟는 의지에 힘차게 두팔을 휘둘러 치환형의 옆에 서자 반짝거리는 미소로 날 맞이하는 호남이 있었다. 아, 빛나는 우정을 무지개 삼아 눈삽을 휘둘러볼까. ...이런 탄력적인 전개는 역시나 나와 어울리지 않았는지 30분만에 나가 떨어졌다. 울끈불끈 펌핑된 양팔을 늘여뜨리고 혀를 내밀고 있었는데, 치환형의 경이적인 작업량을 보니 다시 혀를 내두를수 밖에 없었다.
"형은 도대체 뭘 먹고 사는거에요. 이 오지에 들어온 뒤로 운동도 거의 안하는것 같던데."
순간 눈삽이 날아들었다. 한가롭게 앉아 보온병에서 물이나 떠마시며 묻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이지만 야만인! 이라고 쏘아붙이는걸 잊지 않았다. 역시나 형도 나름 짜증이 쌓인듯 평상시처럼 테클거는것도 잊는게 안쓰러웠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멈출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기를 부려 몇번 더 도발을 시도했다가 겨우 죽음의 문턱 앞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끝이 안보이네."
아련하게 우수를 담아 지긋한 눈빛을 쏘아보이며 읖조려봤지만, 치환형의 고문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가 영 볼품없었나 보다. 치환형은 혀를 차며 조롱하더니 다시 눈삽을 줏었다.
"임마, 이정도는 감히 눈이라고 부를수도 없는거다. 내가 장성에 있었을때 눈이 한번 오면 말이지..."
눈을 푸는 속도에 맞춰 리듬감 있게 타오르는 무용담에 나는 진이 빠지는걸 느꼈다. 맙소사, 저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다니. 믿어줄수도 안 믿어줄수도 없는 밀리터리 판타지를! 치환형의 몇 안되는 치명적인 약점인 '군대 시절 그 대단했던 장치환 하사'의 무공훈장 수여급 스펙타클한 스토리가 그 장대한 시작을 드러내고 있었다. 통칭, 군대썰. 아무리 여기 현역으로 군대 갔다온 사람이 자기 혼자라고 해도 너무하는거 아냐?
"...여단장이 오기전에 우리 소대 하사들에게 주어진 거라곤 숟가락 하나씩 뿐이었..."
이쯤되서는 적당히 들어주는척 추임세를 넣어줄 필요도 없다. 이미 자기 이야기에 본인이 빠져들었으니까. 바로 등뒤에서 목조르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쳐도 반응 한점 없었다. 그놈의 여단장인지 남단장인지 뭐하는 작자길래 한번 떴다하면 저 자부심 넘치는 특전사들이 죽고 사는지 난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미 이야기는 거침없이 흘러갔다. 적설량이 2미터(!!)쯤 되던 눈속에서 여단장님의 주차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장렬히 산화되고 낙오된 전우들이 어느세 두자릿수는 될 듯 싶었다. 그 소대 하사가 5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뭔가 테클걸기도 귀찮아져서 힘을 내 눈을 퍼 담았다.
"그때였지. 저 반쯤 사이보그 군단이라고 할수 있는 북괴뢰군도 넘보지 못할 우리의 후방에서 정체 불명의 그림자가 나타난것은 말이야. 그 행보관님의 기도비닉은 가히..."
내가 미쳤지. 몇 안되는 동기 연구원이고, 연구원치고 몇 안되는 현역 예비역에 말로만 듣던 특전사 출신이라길래 살갑게 군대 이야기를 물었던 첫만남이 잘못이었던 거다. 이 인간은 그 뒤로 자연스럽게 위풍당당 군대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이제와서 그 뻥이 수습도 못할 정도가 되버렸다. 이미 도취된 본인은 기억자체를 조작해 버린듯도 싶지만 기가차는 이야기다. 왜 밖의 여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에 기겁을 하는지 너무나 선명하게 경험해 버렸다. 도대체 30살 다 되가는 성인남자가 공중 삼회전 트리플 악셀로 대폭발 허리케인슛을 쏴 골대가 무너진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손이 얼어 눈삽이 붙은 체 행보관님은 날 말리셨지. 나만이라도 살아야 한다고. 나만이 국방을 지킬 하늘의 백장..."
에잇!
하고 나도 모르게 눈삽으로 뒤통수를 후려쳐 버렸다.
다행이 10초쯤 뒤에 멀쩡이 일어섰는데, 더욱 다행인건 떠들던 기억도 잊어버린듯 했다. 건강한 사람은 편하구나 싶었다. 몇번이라도 더 후려쳐 줄 수 있었는데.
내가 이공계 답지 않는 상상력을 발휘해서 오늘 이 에피소드가 소설의 시작이라면 가정을 해보자. 독자라면 의아해할 것이다. 도대체 눈 푸는 이야기는 뭐고, 군대 이야기는 뭐야. 여긴 배경이 연구소 라는 설정 아닌가? 작가가 착각한건가? 나라도 그렇겠다. 도대체 이 유수의, 굴지의, 초 엘리트 연구소 MDR의 연구원으로 뽑혀온 재원인 내가(그리고 믿겨지진 않지만 치환형도) 한가로이 눈이나 치우고 있는 이 상황은 도대체 뭔가. 그놈의 여단장이라도 뜬거냐 하고 외치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하진 못했다. 사실 정답에 굉장히 가까운 추론이기도 하다. 말 안듣기로 유명한 MDR의 신입 연구원들이 감히 일구반언조차 하지 못하고 헬기포트나 단장하고 있게 만들 사람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쯤 되냐고? 글쎄 미합중국의 넘버원이 온다고 했으면 예의상 해줄 수 도 있겠지. 그건 어디까지나 도의상이다. 명목상. 보여주기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 자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다르다. 감히 할 수 없노라고 튕길수 조차 없는 거물중의 거물. 달리 말하자면 괴물중의 괴물. 천재, 수재, 영재, 준재俊才, 일재逸才를 총 망라해서 모아놨다는 이 연구소의 프라이드 덩어리들 조차도 만나기를 고매했던 그 분이 오시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에 당도하는건 저 유명한 전능수全能數 뤼 펑쉬어呂風碩소장이었다.
흔히 세간에서 과장되게 떠들기를 유럽연합과 미합중국 그리고 떠오르는 실세 중국 이라는 세계 구도를 바꿔놨다고 까지 평해지는 아시아의 세 천재들 중 특히나 중화의 영웅으로 추앙되는 그가 이곳에 오는 것이다. 물론 세계 구도까지는 오버라고 해도 최소한 우리 학문을 한다고 자부하는 치들 에게는 그 이상의 폭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전대미문의 존재가 바로 그들 이였다. 이런 호들갑 스럽다 못해 광란적인 반응이 하나도 이상할게 없었다. 여중에 우연찮게 들린 HOT나 마찬가지니까. 아니 요즘은 GOD였나. 빅뱅이었나.
선생님에게 칭찬받길 바라는 어린애마냥 연구 주제를 바리바리 싸들고 평론 한마디를 받기위해 오매불망 기다리시는 어르신들이 계셔 우리 말단들은 이런 청소 나부랭이나 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그가 얼마나 불세출의 천재일지는 차치하더라도 중국대륙의 히어로나 다름없는 그 존재는 반중 의식이 팽배해진 현재 우리나라에 어울리는게 아니었다. 만약 공식적인 루트로 방문했다면 좋은 모양세는 못보였을듯 하다. 다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기회니 다들 예민해진 상황이어서 사실 연구소 내부는 현재 전쟁터보다 몇배는 높은 긴장감 속일 터였다. 학자라는 인간들은 아무래도 대중 또는 언론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라 '반중의식? 그건 새로운 중력자 가설이냐?' 이러고 싶었을텐데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불가일세의 대학자가 바로 옆나라에 있는데 교류 한번 떳떳하게 못하다니 할복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을거다.
물론 내 알바는 아니지만.
"전능수全能獸라. 진짜 삼두육비의 괴물딱지가 헬기에서 내리는건 아니겠지?"
"아이고, 그럼 잘됬구나 하는 심정으로 주먹부터 날릴 사람이 무슨 소릴."
본인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하던 치환형은 새삼스레 정색을 했다. 저런 열혈쾌남이 어떻게 연구자 가운을 입고 몇 나노미터짜리 샘플들을 다루는건지 미스터리하기 그지 없다.
"야, 아무리 나라도 감히 려소장님한테 그런 불경스런 상상을 하고 싶진 않다. 솔직히 우리는 그런 천재들하고 한시대라는거에 감사해야 되지 않겠냐? 우리는 남들보다 더 민감하게 알고 있잖아."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는 형을 나는 바라보았다. 조금은 멸시하듯. 약간은 조롱하듯. 어쩌면 경애하듯.
"진짜 천재가 얼마나 엄청난건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것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잖아. 난 가끔 그 재능의 편린이라도 볼 수 있는 내 두뇌에 감탄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당신은.
헬기도착 30분전을 알리는 메세지에 헐레벌떡 수선을 떨며 정리를 끝마치고 헬기포트로 돌아가자 이미 인산인해의 띠가 완성되 있었다. 이 연구소에 이렇게 많은 인간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팝콘이라도 가져와서 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양식있는 정상인은 상상에서 끝내고 만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참았다. 소리와 함께 찾아든건 차가운 바람이었다. 인위적이고 폭력적인 시끄러운 바람이 머리위에서 쏟아졌다. 프로펠러가 돌아가며 뿜는 거친 숨소리에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쳐 들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치환형은 침이라도 흘릴 기세인지라 정강이를 후려 차 보았지만 역시나 혼이 나간 상태라 반응이 없었다.
정말 이런 광신적 반응을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천재? 그게 뭐라고 사람들을 이렇게 홀리게 하는건지. 오만하고, 기고만장하고, 건방지고, 버릇없고, 대인관계 얄팍하고, 예의범절 무시하고, 자기 혼자 잘난 맛에 살아가고, 동정심도 없고, 이해력도 없고, 하등 곁에둬서 도움이 될 게 없는 존재가 천재 아닌가. 물론 어느정도 편견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본 예는 다 그렇다. 저기서 많이 벗어난 존재는 벌써 천재가 아니었다. 제아무리 번뜩이는 재능과 영감을 가지고 문제를 호쾌하게 풀어낸다고 해도 나는 그럼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다.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와 창의력으로 진리를 견고하게 구축해 나간다고 해도 관심 밖이다. 어디 가까운 서점에 가서 들여다 봐라. 천재는 그냥 책속에만 있는거다. 책을 늘리고, 딱딱하게 견고하게 키우고, 지식이라는 전당에 보석길을 깔기 위해서나 존재하는 거다. 나의 현실속에 천재란 없다. 절대로. 결단코. 그런 존재가 무슨 연예인이라고 이 난리를 치고 모이는 건지 난 알기는 하지만 이해할 순 없다. 그래서 아마 려소장이 헬기에 내리는 모습을 가장 똑똑히 바라본 것도 나일거다. 다들 려소장의 후광에 도취되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심지어 진짜 후광도 마음속에서 우러난 정신도 아닌 개개인이 만든 환상속의 신기루 였음에도.
"와우, 저게 진짜 세계 정상의 두뇌란 말이지. 전능을 정복한 사탄의 짐승은 진짜 사람으론 안보이는데."
치환형의 가당치않은 호평 속에서도 나는 냉정히 그를 바라봤다. 그건 그냥 늙은 학자였다. 깡마른 손과 고집있어 보이는 꽉 다문 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기와 다를바 없는 아집이 가득찬 눈은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천재의 그것이었다. 아, 진짜 천재구나. 그냥 천재. 하는 깨달음에 나는 얼마 있지도 않던 흥미를 잃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잠시 의외의 것을 보았다. 이 MDR에서 최연소인 나보다도 훨씬 어려 보이는 8명의 소년 소녀들이 한가득씩 짐을 안고 헬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야 그들이 누구인지 떠올렸다. 15억을 돌파한 중국 대륙에서도 최고의 수재들만을 모아 만든 영재기관에서 려소장을 보좌하기 위해 뽑아냈다는 8명의 조수들은 중국에서 아이돌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과연 용모단정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까지 겹쳐졌으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그렇게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 신기한듯 헬기에 내려서 사방을 두리번 거리던 아이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 차가운 눈은 아무리 멀리서라도 얼음으로 도려낸듯 선명하게 보여서 나는 깨달았다. 저 아이들은 중국에서도 최고의 대접을 받던 아이들이다. 시골에서 막 상경한 꼬마들도 아닌데 신기하다는듯 이 오지의 연구소를 둘러볼 턱이 없었다.
저 귀엽기만 해 보이는 꼬맹이들은 지금 우리를 정찰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호들갑을 떨고 나서 인파는 파도처럼 연구소 안으로 밀려 들었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본적 없었던 소장과 부소장이 양손을 불이나게 비비며 왕후장상 모시듯 뤼 펑쉬어 각하를 모시고 간 후 였다. 그제서야 땅이 꺼질듯한 숨을 몰아쉬며 치환형이 정신을 차렸다.
"...지금까지 숨도 안쉬고 구경한거유?"
"아와우허야크여. 넌 그 상황에서 숨이 쉬어지냐? 오오라가 무슨 사방 100미터 생명체에게 죽음의 손길 효과처럼 쏟아지던데."
"글쎄. 난 저 사람들 떠난 다음에 뒷정리 할 걱정밖에 안들던데."
내 말을 한참 곱씹던 형은 광란의 상태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었다. 뒷정리를 할만큼 한가하고 힘없는 존재가 우리밖에 없다는걸 이제서야 깨달은 듯 싶다. 그러고 보니 지금 연구소내는 무슨 축제처럼 꾸며놨다고 들었는데. 사자탈도 준비했다던가.
"으, 그걸 다 치워야 한단말이지."
중얼거리며 무슨 계산이라도 하듯 한참 손가락으로 춤을 추더니 괴성과 함께 깨어났다.
"괜찮아! 오늘 본것 만으로도 마이너스 다 상쇄하고 남는다! 기쁜 마음으로 치워주지 그딴것."
"진짜 팬은 팬인가봐. 왜 사인은 안받고."
한껏 빈정거림을 담아서 말해줬는데 대답이 의외였다.
"아, 물론 팬이긴 한데. 사실 난 전능수 보단 다른쪽이다. 말하려고 하니까 좀 부끄러운데 난 침몰원소沈沒元素쪽 골수팬이라."
"...테러리스트쪽 기질이 강하다는 점을 보면 확실히 형이랑 어울리긴 한다."
왠지 국민감정으로 연결될 것 같아서 더 말을 잇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실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저 중국의 전능수에게 비견될만한 이름이라고는 이 나라에선 침몰원소 하나 뿐이니라. 반중의식이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뿌리 깊은 반일사상에는 비견될게 아니었으니, 아시아의 세 천재들 중 전능수와 불손설계不遜設計를 제외하면 남는 이름은 그것 하나 뿐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이야기할만한 주제가 아닌것도 분명했다.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학문에 뜻을 뒀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 침몰원소에게 격추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테니까. 그 이름은 분명 경외되면서도 터부시 될 수 밖에 없는 아이콘 이었다. 부끄러울 정도로. 사실 그것보다도 실명조차 밝혀지지 않은 존재를 침몰원소따위의 무협지에서나 볼듯한 별명으로 부른다는것 자체가 나는 부끄러워 상상도 안된다. 도대체 어느나라 누구의 작명감각으로 지어낸거냐. 한때 뉴스나 언론에서 사방팔방 기사를 찍어낼때는 더 엄청난 별명들도 있었던거 같다. 인터넷에는 진리를 쫓는 루시펠 같은 허무맹랑한 소개글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참 시대를 풍미했던 이름이다.
"테러리스트라기엔 지나치게 로맨티스트 적인 기질이 강하지 않냐."
절대로 착각일겁니다요.

덧글
라자루스 2009/10/23 10:47 # 답글
매일보는 시험이라....